미칠 것 같은 한국 애니메이션 [1]

http://ozzyz.egloos.com/3756083

-----------------------------------------------------------------------------

애니메이션 제작비는 왜 그리 비싼가. 제작기간은 왜 그리 오래 걸리나. 적지 않은 국가 예산이 투입되고 있는 지원 제도는 제대로 운영되고 있나. 미칠 것 같다. 한국 애니메이션, 대체 어디를 어떻게 고쳐야 제대로 굴러갈 것인가.

그는 영웅이었다. 모두가 그를 구세주 보듯 했다. 2005년 봄의 일이다. 한국 애니메이션계에, 아니 정확하게는 한국 애니메이션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 앞에 깜짝 놀랄만한 일이 벌어졌다. 그들의 시선은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최우수 단편 애니메이션 부문 후보 명단을 향해있었다. 박세종, 이라는 한국 이름의 감독이 눈에 띠었다. 난리가 났다. 정확히 말하자면 호주 출신의 교포 감독이었다. 후보에 오른 9분 분량의 단편 애니메이션 <버스데이 보이> 또한 호주 작품이었다. 수상에는 실패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언론도 열광했다. <버스데이 보이>는 잘 만들어진 단편이었다.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04년 한 해 동안 35개의 영화상을 휩쓸었으며,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 조금 앞선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이미 최우수 단편 애니메이션상을 수상한 바 있었다. 언론은 교포 감독의 성과 위로 “11년 전 배낭여행 중 멜버른에서 만난 호주 여대생과 애틋한 사랑을 나누다가 7년 전 결혼, 호주에 정착한 가난한 미술가가 동양의 서정성을 간직한 애니메이션을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이 같은 업적을 이룩했다”는 신화를 더 했다. 헝그리 정신! 라면 먹고 뛰어라! 뜨거웠다.

한국은 박세종 감독을 서둘러 모셔왔다.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은 박세종 감독에게 어찌하면 한국의 애니메이션이 발전할 수 있을지 물었다. 박세종은 호주 감독이다. 호주 감독에게 한국 애니메이션이 어떻게 하면 발전할 수 있을지 물었다. 압구정동에서 붕어빵을 잘 팔아 성공한 장사꾼에게 남가좌동 어디에서 어떻게 장사하면 그렇게 성공할 수 있을지 물었다. 그는 “호주에는 단편 애니메이션 지원제도가 있어 안정적인 작품 제작이 가능하다”고 답했다. 바로 ‘애니메이션 제작 스튜디오 지원’이라는 이름의 단편 애니메이션 지원제도가 뚝딱 생겼다. 마술 같았다. 20분 분량 애니메이션에 무려 2억을 지원하는, 흡사 로또같이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더불어 강원정보영상진흥원은 “검증된 감독과 함께 세계시장을 겨냥한 한국형 창작 장편 애니메이션을 만들겠다”는 취지 아래 박세종 감독을 전격 영입했다. 2006년 5월이었다. 언론은 ”아카데미 노미네이트 이후 숱하게 많은 해외의 메이저 제작사들로부터 영입을 제의받았으나, 모국 애니메이션 산업의 발전을 위해 내린 용단“이라며 쿵짝을 맞췄다. 때를 맞춰 ”창작 애니메이션 콘텐츠 육성의 중요성을 고취” 시키고자 국회에서 <버스데이 보이>가 상영되기도 했다. 그는 가족을 이끌고 7년 만에 한국을 찾았다. 강원도에서 모든 생활 수단과 편의를 제공했다. 2년 안에 기획완료, 4년 안에 완성해달라고 요청했다.

2년이 지났다. 지금 박세종 감독의 안부를 아는 자는 그리 많지 않다. 그는 이미 가족을 이끌고 호주로 돌아갔다. 어느 술자리에서 “가족들 데리고 여기까지 왔는데 진행되는 건 없고 모든 게 뒤죽박죽이다”라며 눈물을 쏟았다는 후문이 전해졌다. 상당한 예산이 낭비됐지만 책임을 지는 자도, 묻는 자도 없었다. 아참, 2억을 지원하는 ‘애니메이션 제작 스튜디오 지원’은 4기를 마지막으로 2년 만에 지원을 중지했다. 문화부 지원 예산이 부족하다는 이유였다. 꿈은 박살났다. 쓸쓸했다.

지원제도의 문제

이 소동극 저변에 작동하는 이데올로기란 너무 저열해서 간단하다. 아카데미에서 상 받을 뻔한, 한국 애니메이션 산업 맥락에 대해 알 리 없는 호주 감독에게 수십억을 때려 쑤셔 박으면 세계에 내놓을만한 한류 작품이 만들어질 것이라 기대하는, 맥락이고 상식이고 전부 날려먹은 어처구니없는 근시안이다. 미야자키 하야오에게 돈이라면 얼마든지 줄 테니 한국 제작 시스템 위에서 이 땅의 애니메이션 역사를 새로 쓸 만한 걸작을 만들어 달라, 요청하면 그게 가능하리라 생각하는 것이다.

또한 짧은 시간 안에 가시적인 성과를 봐야한다는 강박이 지원 제도의 생산성과 연속성을 저해하고 있다. 박세종 감독의 한 마디로 만들어졌다가 2년 만에 유명무실해진 ‘애니메이션 제작 스튜디오 지원’의 실패는 조급증이나 지원 주체의 문제에 앞서 시스템의 문제다. 국가에서 지원하는 제도이다 보니 상부에 보고할만한 성과가 단기간 안에 필요한 것이다. ‘애니메이션 제작 스튜디오 지원‘의 경우를 다시 들여다보자. 2억을 들이다보니 아무래도 각 작품의 기술적 완성도가 상당했다. 문화콘텐츠진흥원은 감독과의 합의를 거쳐 몇 개 작품을 SBS에 판매했다. 대금으로 받은 천만 원은 감독과 오백만원씩 나눠 가졌다. 관계자 A씨는 “문화콘텐츠진흥원 측에서 감독이 수락할 수밖에 없도록 은근한 압박을 가한다”고 말했다. SBS에서 방영하는 것 자체가 보고서에 한 줄 추가할만한 ’성과‘이기 때문이다.

일본에선 최근에야 국가 주도의 지원제도가 생기는 추세다. 하지만 그것을 바라고 덤벼드는 제작자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이미 상당히 보수적이고 조직적인 시장이 성숙해있는 단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국 애니메이션 시장은 일본처럼 자생적으로 성숙할 여지가 없었나. 아니다. 기회가 있었다. 1967년 신동헌 감독의 장편 애니메이션 <홍길동>이 등장했다. 흥행에도 성공했다. 이후 창작 애니메이션의 역사가 시작되는가 싶었지만 이는 곧 넬슨 신 감독으로 대표되는 OEM 애니메이션의 시대로 이어졌다. 창작력 없이 기술력만 쌓여가는 시기였다. 다소 아쉬운 부분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시장은 돈이 되는 방향으로 움직이기 마련이고, 당대의 OEM 시장이란 확실히 매력적인 것이었다.

올림픽을 전후해선 원작 만화를 활용한 TV애니메이션의 전성기가 시작됐다. 그것 역시 돈이 되니까 옮겨간 것이다. 매우 전형적인 시장의 성숙 과정이고 흐름이다. <달려라 하니> <떠돌이 까치> <장독대> <머털도사> <독고탁> <2020년 우주의 원더키디> <아기공룡 둘리>같이 익숙한 역사가 펼쳐졌다. <날아라 슈퍼보드>같은 경우는 시청률이 <대장금>에 육박할 만큼 파격적이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90년대 중반에 이르러 놀랍게도, 사라졌다. 그러더니 갑자기 <블루시걸>(94) <헝그리 베스트 5>(95) <아마게돈>(96) 같은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하나같이 만듦새가 엉성해 재난으로 기억되는 작품들이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90년대 중반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 공교롭게도, 정부가 만화와 애니메이션에 적극적인 지원을 시작한 시점과 정확히 겹쳐진다.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1993년에 <쥬라기 공원>이, 1994년에는 <라이온 킹>이 있었다. 영상물 한 편의 해외 흥행수익이 자동차 수출 몇 십 만대에 버금간다는 말에 문민정부는 정신을 놓아 버렸다. 눈앞에 노다지가 펼쳐졌다. 1996년 1월, 정부는 드디어 '만화산업육성발전방안'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정부가 적극적인 지원의 의지를 보이기 전까지만 해도 애니메이션은 ‘예술 산업’이었다. 정부가 손을 대자 ‘예술’은 사라지고 ‘산업’만 남았다. 애니메이션은 공산품으로 전락하고, 제작자는 수출 역군이 됐다. 애니메이션 산업에 손가락이든 발가락이든 조금이라도 인연을 걸친 사람이라면, 정부로부터 쏟아지는 눈먼 돈을 손에 쥐기 위해 걸인처럼 달려들었다. 일본에 주문을 넣어 이순신 장군 같은 위인을 소재로 한 5분가량의 프로모션용 애니메이션 영상을 만들고, 63빌딩에서 성대한 제작발표회를 가진 뒤 지원금만 챙겨 달아나는 행태가 빈번하게 벌어졌다.

그러니까 이를테면, 철이네 마을에는 재래시장이 있었어요. 조금씩 손님이 늘고 상품의 종류도 다양해지면서 시장이 커져가는 중이었답니다. 어느 날 재래시장 옆에 거대 쇼핑몰이 들어섰어요. 옆 동네 스필버그 쇼핑몰이 대박이 나서 난리가 났다나 봐요. 그러거나 말거나 위치도 접근성도 가격도 뭐 하나 재래시장보다 나을 것이 없어 왜 만드나 싶었죠. 그런데 철이네 마을 이장님이 이 쇼핑몰에 입주만 하면 무조건 1억씩 주겠다고 한 거예요. 옆 동네 이장님이 많이 부러웠나 봐요. 어중이떠중이들이 몰려들었죠. 재래시장 상인들은 화가 나기 시작했어요. 노력해서 벌어봤자 한 달에 오백만 원 벌기 어려운데 저기 입주만 하면 1억을 준다니. 나중에는 재래시장 상인들도 하나 둘씩 쇼핑몰로 향했어요. 재래시장은 곧 망했고요. 쇼핑몰은 여전히 장사가 안돼요. 하지만 그럼에도 여기서 장사를 해보겠다는 상인의 줄은 끊이지 않는답니다.

창작 애니메이션 - OEM산업 - TV애니메이션의 과정을 통해, 한국에선 일본과 흡사한 형태의 애니메이션 시장이 자생적으로 형성되는 중이었다. 국가가 나서서 그 싹을 짓밟아 없애 말려버리고 말았다. 돈 욕심 때문이었다. 결국 돈을 벌지도 못했다. (계속) 허지웅 (<프리미어>173호 '딥 포커스')

[미칠 것 같은 한국 애니메이션 (2)] 에서 계속됩니다.

by 이온 | 2008/09/22 12:40 | 트랙백
트랙백 주소 : http://eion47.egloos.com/tb/4627561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